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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In Lugano

Rhapsodist@ 2024. 3. 14. 17:44

어제는 기차를 타고 루가노로 왔다. 기차는 내가 알고 있던 이탈리아 기차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한시간여를 달렸는데 좀 더 걸렸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루가노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바로 짠~ 하고 무대커튼이 걷히듯 바로 루가노 호수의 그림같은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니, 이렇게 바로 본론이야?’ 라는 생각마저 들게끔 말이다. 보통은 인트로가 좀 있고 약간은 고생을 해야 도시의 본론을 볼 수 있건만 여기 루가노는 역사를 바로 Scenery view 앞에다가 지어놓아서 여행객이 찾아 해맬 필요도 없게끔 한다. 희안하게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심신이 안정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밀라노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인데, 기분장애가 있는 환자들이 지내면 병세가 좋아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릴렉스 하다는 것이 무기력해진다는 것과는 달리 도시 전체가 포근하면서도 생동감과 질서가 있는 것 같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모짜르트의 장조 같은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몇 년 전 꼬모를 갔을 때 기대보다 큰 감흥이 없었어서, 사진으로 봤을 때 꼬모보다 더 좋아보일게 없었던 루가노라 별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와서보니 여기도 포지타노나 카프리처럼 실제로 와야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포지타노, 카프리의 무드와는 또 조금 다르다.
관광객도 그리 많지는 않고 적당하여서 매우 쾌적하다.

오전이긴 하지만 일단 나에게는 짐이 있기에 (큰 캐리어 하나와 남자용 백팩 가득찬 것) 호텔로 바로 가기로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좁은 길을 하나 건너니 버스들이 왔다갔다 하는 정거장이었다. 티켓기계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보고 따라서 1일용 권을 샀다. 왠지 Zone 2 에 Montagnola가 있을 것 같아 대충 넓은 걸로 골랐다. 10.4유로.. 그리고는 바로 버스가 와서 탔는데 체감상 3분정도 세 정거장만 가니 (한 정거장 간격이 매우 가깝다) 바로 Sasa 라는 곳이었다. 내가 묵을 곳은 Villa Sassa인데 지명이 sassa 라 그렇게 지었나보다. 옛날 루가노 부자가 살았을 것 같은 저택에 들어온 느낌으로 걸어 들어왔다. 호텔 직원은 해야할말만 하는 타입으로 기대보다는 덜 친절했는데, 아마 내가 힐튼밀란의 특출난 환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어쨌든 방이 아직 준비안되었다. 3시되어야 된다라는 말을 듣고 짐만 맡기고 나왔다. 영어를 잘하는 타입은 아니어서 내가 헤르만헤세 박물관 가는 법을 물으니 센터로 가라고 했다. 내가 그건 아닌것 같은데? 하니깐 그제서야 인터넷 검색을 켜길래 됐다 나 알아서 가겠다 했다. 그러니 택시를 불러줄까? 라는 무서운 말을 하길래 (십만원 넘게 나올 것 같은데..) 됐다. 비싸서 안탈련다. 라는 말을 남기고 무거운 백팩을 지고 호기롭게 나와서 구글맵을 켜서 따라갔다.

구글맵을 켜서 10분정도를 걸었는데 타고난 방향치인 나는 계속 반대로 걷기 일쑤였다. 갈림길마다 깨알같이 반대로 가서 구글맵의 파란동그라미가 반대쪽으로 가있기를 반복했다. 예정보다 세 배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겨우 Montagnola 행 버스인 436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막상 거기에 도착하니 주차장건물만 휑하니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스탑은 보이지 않고,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서 구글맵이 잘못가르쳐줬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젊은 남자에게 길을 물어봤다. 이탈리아어를 쓰는 곳이지만 스위스라서 그런지 다들 영어를 매우 잘하는 것 같다. 아주 친절하게 저쪽에 가면 된다고 알려주길래 고맙다고 하고 갔는데 거기에 436 버스는 서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음 정거장을 찾아봐야겠다 싶어서 또 그 일대를 헤매다가, 아무래도 아까 거기 주차장건물 근처에 가보아야할 것 같아 다시 그리로 향했다.

이 건물에서 버스 탈 수 있냐? 라고 지나가는 중년여자분에게 물어보자 아! 이러더니 건물안에서 타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아뿔사.. 건물 표지판이 죄다 이탈리아어(?사실 이탈리어인지 무슨어인지도 모르겠다)만으로 되어있어서 당췌 알 수가 없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서 지하로 내려갔더니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시외버스 출발하는 곳인가보다 해서 티켓을 사러갔는데 티켓오피스에 아주 친절한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알려주고 왕복도 끊는다고 하니까 원데이 티켓을 끊어주었다. 내일까지 쓸 수 있다고.. 가격을 보니 아까 내가 산 것과 같은 것 같아서, 혹시 이거 이거 아니야? 했더니 앗. 이러더니 또 아주 친절하게 환불해주었다. 루가노는 인터넷에 정보가 별로 없어서 가이드북을 그냥 사서 들고올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내가 호텔에서 나온 것은 분명 11시 10분정도였는데 이때가 이미 시간이 12시 20분정도였다. 15분만에 올 길을 한시간도 넘게 걸린 것이다. 어쨌든 구글맵과는 달리 다음버스가 1시 5분이라고 해서 점심을 미리 먹기로 했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들어가기로 했다. 딱봐도 맛없어 보이는 곳이었는데 그냥 살몬토스트 하나만 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왠걸 바삭하고 얇은 빵 세겹 사이사이에 크림치즈와 아보카토, 연어가 조화롭게 어울려 굉장히 맛있었다. 와.. 역시 이탈리아권이라 다르구나 하면서 행복하게 반틈을 먹고 나니 배가 불러져서 나머지는 싸달라고 했다. 들고다닐 일이 걱정이긴 하지만, 또 언제 배가고파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20분 정도를 버스를 타고 달리니 몬테그놀라에 도착했다. 조금 걸으니 헤세가 살던 Cassa ~~ 가 나타났다.

이제야 여기까지 왔네요. 헤세 할아버지.
나는 막연하게 헤세가 세계명작작가라서 최소한 몇 백년은 된 사람인 줄 알았는데, 1870년생밖에 되지 않았었다. 1970년대생들과 같이 늙어가고 있으니 불과 100년쯤 전에 살았던 사람인 것이다. 아, 그래서 그렇게 와닿았나? 이정도면 거의 동시대라고 해도 되지 않나 싶었다. 스탕달의 소설에서도 그렇고 이들 때는 그렇게 부모들이 공부잘하는 자식에게 성직자를 시키려고 했던걸 보면 성직자가 현재의 ’의사‘정도 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이 사람의 소설이 나에게 그렇게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학교시스템, 선생님 말씀을 (어떤 시스템, 선생님의 개별 특성과는 관계없이) 잘 듣는 ’착한 학생‘, ’순종적인 학생‘이 되기를 거부했다고 얼마나 욕을 먹었던가. 괴짜로 낙인찍히기도 하고… 결국 알고보니 나는 괴짜도 아니었고 우울증 환자도 아니었는데. 오히려 반대로 그런 순종적인 아이들보다 좀 더 액티브한 인간이었다.
헤세의 부모나 교사는 후에 노벨문학상을 받을지도 모르고 이 아이를 혼내고, 가두고,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했던 것이다.
정말 웃긴 일이다. 그가 훗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수필에서 언급하였다. 원래 인간 사회는 그런것. 개성과 재능을 가진 자들을 그렇게 핍박할 때는 언제고, 죽고나면 칭송하며 이들의 결과물을 또 강압적으로 순종적인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어쨌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설익은 생을 마감하려고 까지 했던 시절 나를 꺼내준 수레바퀴 안에서, 데미안을 써주어서…
그 힘으로 지금까지 몇 십년을 더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헤세박물관은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내가 갔을 때 나밖에 없었다. 조금 지나니 유럽사람 몇이 더 오긴 했지만)
혼자 1층에 앉아계신 헤세를 닮은 할아버지(? 이분이 관장이신지는 잘 모르겠다)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셨다.
나에게 잘해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느껴졌는데.. 뜰에서 가지고온 샌드위치를 먹어라 1층에서 지금 비디오를 보겠느냐? 이런 말에서 느껴졌다.
서로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어서 안타까웠다. 그래서 소통은 포기하고 그냥 1층에서 4층까지를 계속 오르락내리락 했다.
헤세가 그렸던 그림도 구경을 하고.. 대부분 루가노를 그린 풍경이었다.
절친들 사진과 그림도 보고..

헤세가 썼던 안경, 모자, 옷 같은 물건들도 구경하고 걸었던 산책로도 걸어보았다.
그가 말년을 보냈던 곳이라고 알려져있는데 루가노로 이사들어왔던 나이를 계산해보니 지금 내 나이정도밖에 안 되었다. ㅎㅎ
요즘은 내나이의 사람들이 중년이기조차 거부하고 아직 청년이라고 온몸으로 항의하고 있는데 (미용의학의 도움에 힘입어)
말년에 이사왔다고 말하니 좀 우습기도 했다.

나도 여기와서 살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을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호텔 청소를 해도 한국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적폐 범죄자 취급당하지도 않을것이고
하는 말을 몰래 녹취당하지도, 녹화당하지도 않을텐데. 하루하루가 불필요한 긴장의 연속인 삶..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니 내가 행복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만 같다.
현재 상황에 대하여 어떠한 불만을 이야기하면,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잖아? 나는 니가 부러운데..’라는 답이 돌아오고 이제는 나조차도 그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서 왠지 내가 행복하다고 믿지 않으면 이상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막상 살아보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생각보다 작은 주택을 계속 오르락내리락 거리다가 사진 설명이 죄다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로만 되어 있어서 이해하길 포기하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독일어를 계속 공부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을 아주 쬐끔 했다.

헤세때문에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했다가 그 댓가로 돌아온 것은 정확하게 헤세의 가치와 반대되는 고교생활이었다. 당시 살던 지역을 옮겨서 고교 진학을 하는 바람에, 가장 동네에서 경쟁심이 강한 아이들이 독일어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던터였다. 시작하자마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쟁의 바다에서 떠밀려 허우적 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빠진 바다를 자각하기도 전에 다른 아이들은 나를 의식하고 째려보고 있었다. 마침 나는 당시 중2병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해 실존적 질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여서 그 환경을 neglect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그 시기를 생각보다 잘 건넌 것 같다. 하지만 그 청소년기는 어찌보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다음 시기를 위해 단지 희생되버린 시간들로 별의미 없이 흘려버리고 말았다.(사실 그때는 최대한 빨리 그 일을 해치우는데 사력을 다했다.)

헤세 박물관에서 나오면서 사무실에서 살펴보니 대부분이 독일어나 이탈리어로 된. 기념품이었지만 영어 번역판이 같이 되어있는 시집이 보여서 한 권 샀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엽서를 붙여둘 요량으로 몇 장을 사고 돌아가서 포스터도 액자를 만들려고 2개를 샀다. 루가노와 헤세를 기억하면서 지내고 싶다. 조상님들은 내가 자신의 묘도 한 번도 찾지 않고, 제사에도 비협조적인데 왜 100년전에 스위스에서 죽은 독일인 무덤에 가서 이 난리를 치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가장 힘든 시기에 수렁에서 건너준 것은 이 지구반대편에서 100년전에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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